밀리터리

USS Enterprise Trilogy #2 Empress of the Pacific

마루나래~ 2015. 10. 15. 15:52
출처 카페 > 에이스 컴뱃 - ACES W.. | EAGLE
원문 http://cafe.naver.com/acecombatweb/22283 
CCL
안녕하세요

EAGLE입니다

어쩌다보니 집에 일찍 도착하게 되어 원래 예정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뭐 습격은 안 당해서 다행일까 싶지만서도

힘들긴 하네요

그래도 해야할건 해야죠

그런고로 오늘도 시작합니다



USS Enterprise Trilogy #2
Empress of the Pacific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해상 전쟁으로 불리는

태평양 전쟁

그 치열했던 전쟁 속에서

동료함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절망적 상황에서

그대로 적과 맞서싸워 한 나라의 해군력을 통째로 박살내며

조국을 승리로 이끌고 해전사의 전설로 남은 항공모함이 있었다

오늘은 그 항모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






운명의 날이었던

1941년 12월 7일

엔터프라이즈는 웨이크 섬에 비행기들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원래는 12월 6일 도착해서 정비하고 쉬고 있었어야했으나

중간에 폭풍을 만나 늦어지면서 12월 7일 입항할 예정으로 항해 중이었고

그 12월 7일 아침

진주만에 있던 태평양 함대는

일본 함재기들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어

전함 전력이 사용불가 수준까지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에서 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위치에서 이 비보를 듣게 되었고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행운으로 무사히 살아남게 된다

물론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함대의 복수를 위해

남쪽으로 항공대를 보내 수색을 시도하지만

당시 일본 함대는 북서쪽에 있었던지라 완전 허탕만 치고 돌아왔고

이렇게 그녀의 태평양 전쟁의 막이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3일 뒤인 12월 10일



일본 잠수함 I-70이 엔터프라이즈의 손에 걸려버림으로써

엔터프라이즈의 격침 기록 제 1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942년 2월

엔터프라이즈는 함대와 함께 길버트 제도, 웨이크 섬, 마커스 섬을 공격하지만

성과는 그렇게 크진 않아서

3군데를 공습했음에도 적함 4척과 항공기 열몇대 격파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4월 18일

엔터프라이즈는 호넷과 함께 둘리틀 특공대 임무를 위해 출격했고

그때 엔터프라이즈가 호위를 하던 호넷의 갑판에는





항공모함에서 육군 B-25 폭격기들이

그 거구를 이끌고 그 짧은 활주로에서 이륙을 하는 황당한 광경이 펼쳐졌으며

이 폭격기들의 공격 목표는

바로 일본의 수도 도쿄

미 항공모함은 쌍발기를 운용하지 않는다

쌍발기 발견 보고를 씹은 방심한 일본해군은 그대로 얻어맞기만 하고

이 폭격기들을 단 한대도 못잡는 개망신을 당하며

상당한 심리적 데미지를 입게 된다

이렇게 둘리틀 특공대를 성공적으로 보낸 후

승무원들은 휴가를 갈 생각에 부풀며 4월 25일 진주만에 돌아오지만

내려온 명령은

휴가는 무슨 얼어죽을, 5일 뒤에 요크타운과 렉싱턴 지원하러 출격할 것

이라는 명령이었을 뿐

그래도 까라면 까야했기에

5일간의 정비시간을 보낸 후 4월 30일 출항

산호해 해전을 치르고 있는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지원하러 달려갔지만

전투지역에 도달하기 하루 전날인 5월 8일에 상황 종료되면서

산호해 해전은 유일하게 엔터프라이즈가 참가하지 못한 해전으로 남게 된다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 산호해 해전 직후

북상할 것을 명령받은 엔터프라이즈는 니미츠 제독으로부터 묘한 명령을 받게 되는데


호넷과 함께 일본군 툴라지 기지 전방 900km까지 접근해

일본군 정찰기에게 일부러 걸려라

걸리면 더이상 들키지 않게 진주만으로 복귀할 것


이라는 언뜻보면 황당한 명령이었으나

당시 함장이었던 핼시 제독은 이 명령의 의미를 깨닫고 그대로 실행,

정확하게 정찰기에게 걸리기만하고 전속력으로 진주만으로 도망쳤고

이걸 본 일본군은


요크타운은 지금 나올 상황이 아닌데

남은 요크타운급 2척이 모두 남태평양에 있다

이제 태평양에는 항모 전력이 없으니 그대로 먹으면 되겠네?


하고 대차게 낚여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낚인 일본해군은 그대로 연합함대를 출격시켰고

이것 외에도 온갖 오판을 화려하게 저지르며

미드웨이로 출항한 그들의 꿈



카가 - 아카기 - 소류 - 히류

이 4대가 요크타운 3자매의 손에 요단강을 건너버리면서 끝장나고 만다

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자매함 요크타운을 잃게 된다

그 후 엔터프라이즈는

7월 15일 다시 출항해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하였으며

여기서 명중탄 3방으로 인해 조타 기능이 완전히 맛이 가며

오른쪽으로만 뱅뱅도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으나

40분만에 조타 기능을 고치고

천운이 내려 때마침 내린 스콜

즈이가쿠에서 출격한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돌아왔지만

바로 호넷과 함께 산타크루즈 해전에 참가하게 되고

여기서 엔터프라이즈는 또다시 운좋게 내린 스콜 덕을 보면서

자신이 맞을 공격을 15km 떨어진 곳에 있던 호넷이 다 맞게 되었고

이 후 뒤늦게 발견한 일본군 함재기들의 3차례의 공습에 격하게 저항하면서

지근탄 2발과 어뢰 9발을 피해내고 폭탄 2발만 맞으며



사우스다코타 전함의 막강한 지원과 함께

호넷이 그랬듯 일본군 베테랑 파일럿들을 뭉텅이로 저승길로 보내버렸다

이렇게 호넷을 잃은 후

돌아가는 길에 갈길을 잃어버린 호넷의 함재기들도 다 태워갔는데

당시 되는대로 우겨넣느라 한계인 85대를 넘어가게 되자

그만 착함시키라는 경고가 떴지만

이 경고에 대해 착함유도장교는

닥쳐 판단은 내가 한다. 쟤들 전부 태워!

를 외치며 공간을 마련하기위한 대사투를 벌인 끝에 기어이 전부 태우는데 성공



무려 95대를 태우고 탈출하게 된다

이렇게 호넷도 격침시키고 홀로 남은 엔터프라이즈도 떠나

더 이상 동원 가능한 미 해군 항모가 없어졌으므로

이때가 과달카날을 점령할 기회라고 생각한 일본군은

(그때 새러토가는 수리 중이었고 렉싱턴은 격침당해서 진짜 엔터프라이즈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을 점령하려했지만

이렇게 설마 오겠어? 하면서 짠 어설픈 작전은 곧 망하는 지름길이란건

그야말로 세상살이할때 알아야할 진리 중에 하나

떠난 줄 알았던 엔터프라이즈는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서 응급수리 후 득달같이 달려와

핸더슨 비행장과 연계해 항공대를 파견하는 식으로 전투,

수송전단을 궤멸시키고 일본군에게 무자비 폭격을 가해

핸더슨 비행장을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이 과달카날 해전이 과달카날 전투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핸더슨 비행장 방어전의 일등공신이었던 엔터프라이즈는

결국 1942년 끝까지 살아남아 홀로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뒤집어버리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다사다난하게 1942년을 보낸 후

1943년에 들어가면서 1942년의 보상을 슬슬 받기 시작해

지옥같던 군생활도 풀리기 시작하는데



과달카날 전투 막바지에 새러토가가 전선에 복귀하며

거의 6개월에 가까운 솔로 생활을 마친 엔터프라이즈는

과달카날 전투 막바지 렌넬 섬 해전에 참가해



대파되어 인양중이었던 중순양함 시카고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 폭격기 부대와 미친듯이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지키지 못하고 침몰하는걸 보게 된다

이후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걸 본 미 해군은

엔터프라이즈의 본격적인 수리와 개장을 벌이고

(벌지, 어뢰격벽 추가, 레이더 변경, 활주로 연장 등)

1943년 11월 복귀시키는데

이때에서야 엔터프라이즈는 귀여운 후임 항공모함을 맞이하게 되니



그게 바로 Show Me the Money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3달에 한척씩 퍽퍽 찍어낸 무지막지한 생산력으로 유명한

에식스급 항공모함이었다

이렇게 어느새 그동안 못받았던 후임들까지 두둑히 몰아서 받게된

엔터프라이즈는 곧바로 길버트 제도 상륙작전에 참가

과달카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에식스, 요크타운, 벙커 힐, 렉싱턴

(여기서 요크타운과 렉싱턴은 모두 에식스급으로 부활한 애들)

로 정규항모 6척의 위엄을 보여주며 상륙군을 지원한다

이 작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최초의 야간 항공전으로

함대를 폭격하려던 일본 폭격부대에 일격을 먹이게 된다






1944년에는

1월에는 마샬제도 상륙작전, 2월에는 트럭 섬 공습작전에 참가하고

그 외에도 비스마르크 제도, 케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뉴기니아 섬 등

그야말로 태평양을 활보하며

상륙 지원 임무로 44년 초반을 보냈으며

1944년 6월 필리핀해 해전에 참가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으로 불리게 될 정도로

말 그대로 일본 항공기 대학살을 벌였다

이때 전투가 종료된 후 야간비행으로 복귀하게 되자

목숨걸고 야간등화를 켜라고 명령하며

남아있던 파일럿들을 거의 다 무사귀환 시킨 일화도 유명

(딱 한명 귀환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아이스크림 추가 배급 공약에
눈이 뒤집힌 구축함에게 구조되어 아이스크림과 맞바꿔 복귀된다)

이후 7월 한달을 진주만에서 휴식한 후

8월 24일 출격해

케롤라인 제도, 오가사와라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공격하고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가해

동료함들과 같이 레이드를 벌여





기어이 당시 일본의 마지막 정규 항모였던 즈이가쿠 및 야마토급 2번함 무사시마저 격침,

일본해군에게 제대로 사형선고를 때려넣게 된다






1945년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그 때까지도

엔터프라이즈는 야간 작전 항모로 변경되며 계속 작전을 벌였다

2월에 도쿄를 공습하고

이오지마 전투에 지원하고

오키나와 상륙작전까지 지원하여 5월까지 일본 근해에서 작전을 벌였으나

5월 14일 오키나와 상륙작전 도중

도미야스 슌스케 중위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크게 일격을 얻어맞아


불길의 끝에 보이는 물건이 폭발 순간 날아간 엘리베이터다

전방의 엘리베이터가 120m나 튀어나갈 정도의 대폭발과 함께

전기 계통 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데미지 자체는 짬을 있는대로 먹었던 승무원들

15분만에 불끄고 물빼고 하면서 최소한으로 줄여냈지만

이미 카미카제를 당한 순간의 데미지로 더 이상의 작전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아

1945년 6월 7일 퓨렛 사운드 해군 조선소에 도착해서 수리를 받고

8월 15일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막판에 크게 데미지를 입어 리타이어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 참전하며

태평양 전쟁 그 자체로써 남게 된

그녀의 전과를 요약하면

거의 일본해군에서 유명했던 항모들은 거진 다 한번씩 얻어맞았다고 봐도 되었으며

총합 911대 적기 격추71척 적함 격침최소 192척 파괴 및 피해

엔터프라이즈가 굵직한 전과들을 세운 1942년 당시의 상황에 대보면

혼자서 한개 국가의 해군력을 보내버린 셈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함재기 성능, 베테랑 조종사들 수부터 전함 및 항공모함 댓수까지 일본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현재까지도 이 정도까지 무쌍을 찍은 함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나마 에식스급 4번함 호넷이 저기에 수치상 비교가 가능할 정도의 전과를 기록했으나

호넷의 기록은 사실상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였던

1944년부터 시작되었던지라

함재기부터 함의 성능에 베테랑 운용병력 수까지 모조리 앞서는

일방적 양학구도로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엔터프라이즈 혼자서 태평양 전쟁의 향방을 정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쉽게 말해

애초에 엔터프라이즈가 없었다면 호넷의 저 기록도 불가능했다는 소리








실제로 태평양 전쟁 초기인 1942년

전쟁의 구도는 미 항공모함들이 살아남느냐 격침당하느냐,

사실상 엔터프라이즈를 사수하느냐 격침시키느냐의 구도로 흘러갔으며

일본은 동부 솔로몬 해전과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거의 엔터프라이즈를 격침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그때마다 엔터프라이즈는 엄청난 대응속도와 미친듯한 행운으로 살아서 탈출하며

일본군에게 끝없는 소모전을 강요하며 살아남아

일본의 힘을 모두 소모시키며

에식스급 항공모함 계획이 본격적으로 발동되는 1943년을 맞이하는데 성공




일본군에게 압도적인 천조국 클라스의 현질을 보여주게되고

에식스급이 합류한 그 순간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에게 그야말로 언터쳐블의 존재가 되어 태평양의 여제로 활동하게 된다






개방형 격납고로 급강하 폭격시의 데미지를 최소화하고

요크타운급의 단점이었던 어뢰 방어력

순수히 승무원들의 조종 실력으로 일본군의 어뢰에 안 맞으며 해결

그리고 데미지가 들어오면

짬을 있는대로 먹은 승무원들의 극한의 응급수리능력으로 살아남아버리고

정작 엔터프라이즈를 격침시키기 위해 보낸 항공대들은

하라는 엔터프라이즈 격침은 실패하고

미군의 대공 방어력에 계속 몰살당해

더 이상 제대로 된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항공전력 소모를 당했으며

이마저도 1943년이 지나면 아예 그녀를 건드릴 수 없을 정도

미 항공모함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버렸으니

일본의 입장에서는 아주 미쳐돌아가는 상대가 아닐 수 없었으며

미 해군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꾸준한 개량 및 호위항공모함 배치 등을 통해 엔터프라이즈를 지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여

결국 엔터프라이즈가 뒤집은 전쟁을 자신들의 승리로 굳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맹활약한 엔터프라이즈도

기술의 발전을 따라갈 수는 없었으니

2차대전 이후 세상은 제트기 시대가 되어

프롭기 운용만은 위해 만들어진 요크타운급의 설계는 그 한계를 맞이해

엔터프라이즈도 1947년 2월 17일 퇴역하여

스크랩 처분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활약을 아는 사람들은 이 처사에 반발하며

해상 박물관으로 보존하려고 협회를 만드는 등 백방의 노력을 다했으나

안타깝게도 돈 문제와 당시 의회의 비협조적 태도로 모두 허사가 되어

(웃긴건 그 이후 기념함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아서 일부의 배가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쓸쓸히 해체되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는가 싶어진 순간

협회의 압력에 응한 해군이

우리가 만들 차세대 항공모함에 이 이름을 승계시키겠다

그러니 제발 해체하게 해주세요 OTL

는 딜을 제시하고 협회가 이를 받아들이며 보존 운동을 접어

CV-6 엔터프라이즈는 스크랩 처리됨과 동시에

새로운 항공모함으로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이 계속 이어지게 되니



그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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